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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문원공(文元公) 이언적(李彦迪, 1491∼1553)


옥산서원(玉山書院)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서원.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李彦迪)을 제향하는 곳으로,
선조 5년(1572)에 부윤(府尹) 이재민(李齋民)이 세워 이듬해에 사액되었다. 
사적 제154호.


옥산서원 편액
강당 전면에 걸린 '옥산서원' 편액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글씨이다. 
선조로부터 사액을 받은지 266년이 지나 구인당이 소실되어 중건을 하면서 추사가 편액글씨를 썼다.

 


자(字)는 복고(復古), 호(號)는 회재(晦齋)·자계옹(紫溪翁), 본관은 여주(驪州), 시호(諡號)는 문원(文元), 생원(生員) 번(蕃)이 아들. 1514년(중종 9) 생원(生員)으로서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한 뒤 교서관 정자(校書館正字)·설서(說書)·이조 정랑(吏曹正郞)·장령(掌令)·밀양 부사(密陽府使)·사간(司諫)·종부시 첨정(宗簿寺僉正)·교리(校理)·응교(應敎) 등을 거쳐 1539년에 전주 부윤(全州府尹)이 되어 선정(善政)으로 송덕비(頌德碑)가 세워졌고, 당시의 재변(災變)에 대해 올린 대책문이 뛰어나서 병조 참판(兵曹參判)·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에 올랐다.
 
그후 부제학(副提學), 이조(吏曹)·예조(禮曹) 및 형조(刑曹)의 판서(判書),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을 역임하고 1545년(인종 1) 인종이 죽자 좌찬성(左贊成)으로 원상(院相)이 되어 국사(國事)를 관장했고, 명종이 즉위하자 위사공신(衛社功臣) 3등에 올랐으나 사직했다.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로서 이황(李滉)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유배생활6년동안「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속혹문(續或問)」·「구인록(求人錄)」을 저술했으며 글시를 잘 썼다. 
 
선조 때 영의정에 추증, 1610년(광해군 2) 문묘에 종사되었고, 경주의 옥산서원(玉山書院) 등에 배향되고 있다.

 
 

회재 이언적 선생 묘소
경북 포항시 남구 연일읍 달전리 산81-1번지






문원공 회재 이언적(李彦迪) 신도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76-2호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연일읍 달전리 산81-1

    이 신도비는 1586년 대학자 회재 이언적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글은 손엽이 썼고, 현재 묘소 앞에 있다. 비 전체 높이는 300cm이며, 비신의 높이는 185cm 이다.


 


회재 이언적, 독락당 보물 서울 나들이 특별전 개막
■ 전시명 : 회재 이언적_ 독락당의 보물, 서울나들이
■ 전시기간 : 2019. 10. 15(화) ~ 12. 15(일)
■ 전시장소 :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본관 1층 전시실
■ 전시내용
- 전시를 들어가며
- 역사의 보물, 독락당의 고문헌
- 회재 이언적, 공직자의 모범을 살다
- 아들과 손자, 옥산문중 명문가의 기틀을 다지다
- 500년 전통과 명예를 잇다
- 가문의 자산에서 국민의 자산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