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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탐방] 평택임씨 임경업 , 충렬사 -사적 제189호-

[유적탐방]  
평택임씨 임경업 , 충렬사  
 -사적 제189호- 




안녕하세요. 한국인의 족보입니다.
오늘은 평택임씨 임경업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인 충렬사에 대해 유적 탐방을 하겠습니다.

 
충렬사


충북 충주시에 위치한 충렬사는 추숙종 23년(1679)에 사당을 세웠고, 
1706년에 장군에게 충민이라는 이름을 내렸습니다.
영조 3년(1727)에는 사당 이름을 충렬사라 했습니다.





임경업 장군은 선조 27년 (1594) 충주에서 태어나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 때 콘 공을 세웠습니다.
특히 병자호란 때 백마산성과 의주성을 다시 쌓아 국방을 강화하는 등
나라에 이바지한 바가 컸습니다.





명나라를 숭상하던 장군은 인조 30년(1642) 명나라가 청나라에게 위협을 받게 되자
명군과 협력해 청에 대항하고자 했으나 계획이 탄로나 청군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청나라는 장군에게 여러 제의를 하면서 포섭하려 했으나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 후 1646년 국내의 '심기원의 모반 사건' 에 억울하게 연관되어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고 피살되었습니다.





현재 충렬사에는 장군이 사용했던 유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사당 앞 왼쪽에는 장국 부인의 곧은
절개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부인완신이씨 정렬비'가 있다.

임경업


임경업은 1594년 12월 31일 (음력 11월 2일)~ 1646년 8월 1일 (음력 6월 20일)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친명배청파 무장이었습니다.

본관의 평택. 자는 영백, 호는 고송입니다.
충청도 충주 달천촌 출생입니다. 판서 임정의 6대손입니다.
조선 조정 내 친명 인사의 한 사람으로,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주었습니다.
임경업은 명나라를 위하여 오랑캐를 무찌르는 것으로 보답하여, 명나라와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