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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맹현 선생 묘소

[유적탐방] 이맹현 선생묘(李孟賢先生墓)
-경기도기념물 제114호-


안녕하세요~ 한국인의 족보입니다
요즈음 코로나19 때문에 많이 힘드시죠?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지속적으로 조심해야겠지만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유적탐방을 떠나 봅니다~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도심역에 내려서 덕소역쪽으로 철길 옆길을 따라가 보니 
바로 오른쪽으로 대산재라는 건물이 보이고 
그 뒤쪽 언덕으로 이맹현 묘소가 올려다 보입니다.

 

대산재 외부전경
 

이 재실은 이맹현 선생을 기리고 있으며 엷은 베이지색으로 환한 느낌을 줍니다.
 



이맹현선생묘(李孟賢先生墓)

조선 전기 문신이며 청백리(淸白吏)였던 이맹현(1436~1487)의 묘소로 부인 파평윤씨(坡平尹氏)와 쌍분으로 되어 있다.
묘 앞에는 성종 19년(1488)에 허침(許琛)이 글을 지어 세운 묘비 2기와 1956년에 옛 묘비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어 세운 1기의 묘비가 있다.


맑고 화창한 날씨에서 묘소 전경을 카메라에 담아 봅니다~^^




근재 이맹현 선생 묘비 앞면 / 뒷면

 


근재 이맹현 선생 묘역 문인석
 

다음은 이맹현 선생 업적에 대해서 알아 볼까요?


이맹현(李孟賢)(1436년(세종 18) ~ 1487년(성종 18)

본관은 재령(載寧)이며 자는 사성(師聲)이요 호는 근재(覲齋)이다.
세조2년(1456)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세조6년(1460) 춘당시(春塘試)에 을과로 급제한 후
성균관주부(成均館主簿) 등 여러 관직을 거쳐
세종 29년(1447)에는 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에 올랐다.

세조10년(1464)에 수찬낭관(修撰郎官)되어 최초의 통사인
동국통감(東國通鑑)을 편찬하는 데 참여하였다.
성종6년(1475) 경회루(慶會樓)를 중수하자는 논의가 일어났을 때,
백성들이 극심한 가뭄에 시달라고 있을 때에 건축물을 새로 짓거나
증축하는 것은 금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경상도재상경차관(慶尙道災傷敬差官)이 되어 여러읍의 전적(田籍)을 살펴보고
전안(田案)이 잘못 작성되어 실재 결수와 착오가 많음을 지적하여
그 시정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문장에도 뛰어났고 덕망이 높아 세조의 신임을 받았으며
황해도관찰사로 재직할 때에 청백리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저술로는 유시(遺詩) 4수가 전한다.


이맹현 선생묘 안내판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금대산 중턱에 있는 곳으로
경의중앙선 도심역에서 걸어서 갈 수 있고
이 부근에 많은 유적지들을 함께 둘러볼 수 있어서
  좋은 추억을 남긴 시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