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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 1454 ~ 1504)


도동서원(道東書院)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구지서로 726
동방인 우리나라 도학의 으뜸이 된다하여 서원의 이름을 '도동'이라 하였다.
이 서원은 본래 선조 원년(1568)에 경북 현동 비슬산 밑에 건립되었던 쌍계서원을 1605년 이축 중건하였는데, 1607년(선조 40)에 사액되었다.
한훤당 김굉필(金宏弼) 선생을 주벽으로 모시고,
1678년(숙종 4) 문목공 한강 정구(鄭逑)를 배향 하였다. 현재 보물 제 350호로 지정되어 있다.
 



도동서원 본당
도동서원은 고종 8년(1871) 대원군으로 주도로 진행된 서원철폐령 때 훼철 대상에서 제외된
전국 47개 주요 서원 중의 하나로 이번에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되어 달성군민의 긍지를 높여주고 있다

 
 
 


도동서원 입구를 수문장처럼 지켜선 달성군 보호수 8-2호로 지정된 400년 수령의 은행나무는
선조40년(1607년)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후손인 한강 정구선생이 도동서원이 선조로부터 사액현판을 받은 기념으로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본관은 서흥(瑞興). 자는 대유(大猷), 호는 사옹(蓑翁)·한훤당(寒暄堂).

예조참의 김중곤(金中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의영고사(義盈庫使) 김소형(金小亨)이고, 아버지는 충좌위사용(忠佐衛司勇) 김뉴(金紐)이며, 어머니는 청주 한씨(淸州韓氏)로 중추부사(中樞副使) 한승순(韓承舜)의 딸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소학(小學)』에 심취해 ‘소학동자(小學童子)’로 불리었다.

​선조는 서흥의 토성(土姓)으로서 고려 후기에 사족(士族)으로 성장했는데, 증조부인 김사곤(金士坤)이 수령과 청환(淸宦)을 역임하다가 아내의 고향인 경상도 현풍현에 이주하면서 그곳을 주 근거지로 삼게 되었다.
할아버지 의영고사 김소형이 개국공신 조반(趙?)의 사위가 되면서 한양에 연고를 가지게 되어, 할아버지 이래 살아오던 한성부 정릉동에서 태어났다.



 

문경공 한훤당 김굉필 선생 묘소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모셔져 있다.

 
 



어려서는 호방하고 거리낌이 없어, 저자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매로 치는 일이 많아 김굉필을 보면 모두 피했다고 한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분발해 점차 학문에 힘쓰게 되었다.

경기 지방의 성남(城南)·미원(迷原) 등지에도 상당한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나, 주로 영남 지방의 현풍 및 합천의 야로(冶爐 : 처가),
성주의 가천(伽川: 처외가) 등지를 내왕하면서 사류(士類)들과 사귀고 학문을 닦았다.
이 때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 들어가 『소학(小學)』을 배웠다. 이를 계기로 『소학』에 심취해 스스로를 ‘소학동자’라 일컬었고,
이후 평생토록 『소학』을 독신(篤信)하고 모든 처신을 그것에 따라 행해 『소학』의 화신이라는 평을 들었으며,
나이 삼십에 이르러서야 다른 책을 접했고 육경(六經)을 섭렵하였다.



1480년(성종 11년) 생원시에 합격해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이때에 장문의 상소를 올려 원각사(圓覺寺) 승려의 불법을 다스릴 것을 포함한 척불과 유학의 진흥에 관한 견해를 피력하기도 하였다.
1494년 경상도관찰사 이극균(李克均)이 이학(理學)에 밝고 지조가 굳다는 명목의 유일지사(遺逸之士)로 천거해 남부참봉에 제수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어서 전생서참봉·북부주부 등을 거쳐, 1496년 군자감주부에 제수되었으며, 곧 사헌부감찰을 거쳐 이듬해에는 형조좌랑이 되었다.



 

벽송정(碧松亭)​
경북 고령군 쌍림면 신촌리에 있는 정자로, 확실한 건축 연대는 알 수 었다.
그러나 정자 내에 고운 최치원의 유적문과 한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의 시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서 깊은 건물로 전해지고 있다.